안녕하세요. 이정환 변호사입니다.
투자계약서를 들고 오신 대표님이 개정 소식을 먼저 꺼내시는 일이 늘었습니다. 표준계약서가 새로 나왔다는데 이 계약서는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답을 드리려면 계약서에 적힌 것 가운데 무엇이 지켜야 할 것이고 무엇이 골라 정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갈라야 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벤처투자는 2026년 6월 30일 「벤처투자 계약문화 발전 선포식」에서 개정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를 내놓았습니다. 2023년 이후 3년 만입니다. 통합형으로 32종이던 서식을 투자계약서(SPA)와 주주간계약서(SHA) 둘로 갈라 유형을 5종으로 줄였습니다.
표준계약서 자체는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부가 마련해 권하는 안입니다. 개정됐다고 이미 맺어 둔 계약이 저절로 따라 바뀌지 않고, 투자자가 종전 서식을 계속 쓴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법을 어긴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동안은 조항이 과해 보여도 창업자가 기댈 근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이제는 정부 안은 이런 모양인데 이 계약서는 왜 다른지를 물을 자리가 생겼습니다.
강제인 것은 표준계약서 밖에 있습니다
협상으로 정할 수 없는 대목은 법률에 있습니다.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 2025년 12월 30일 공포됐습니다(법률 제21287호). 그때까지 시행령과 고시에 담겨 있던 제3자 연대책임 요구 금지가 법률 본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시행 시점을 두고 오해가 잦습니다. 이 개정법은 2026년 7월 1일 시행으로 소개되곤 하는데 그것은 법률 전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연대책임 금지 조항들은 부칙 단서에 따라 공포한 날인 2025년 12월 30일부터 이미 효력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올 규제가 아니라 지난해 연말 이후 맺은 계약이 영향을 받습니다. 다만 막힌 것은 회사의 의무를 제3자에게 겹쳐 지우는 요구입니다. 창업자 본인의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개정 표준계약서는 네 가지 사유에 한해 이를 남겨 두었습니다.
서명해 두어도 남지 않는 조항이 있습니다
권고와 강제 말고 축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합의해 적어 두어도 법원이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대법원은 2023년 7월 13일 투자계약 사건 두 건을 선고했습니다.
하나는 원금을 보전해 주는 성격의 약정입니다. 회사가 주식 인수인에게 인수대금 전액을 되돌려 주기로 하거나, 배당이 아닌 방식으로 그에게만 따로 수익을 주기로 한 경우입니다. 대법원은 특정 주주에게만 투하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결과가 되어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효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3. 7. 13. 선고 2021다293213 판결). 같은 날 나온 다른 판결은 나머지 주주가 동의했더라도 결론이 같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22다224986).
사전동의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자금이 회사에 꼭 필요했고 동의권 없이는 투자를 끌어올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허용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주주평등 위반이라며 무효로 본 원심은 파기되었습니다.
가장 짚고 싶은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동의를 받지 않았을 때 회사가 지급하기로 정해 둔 금원입니다. 대법원은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아 원칙적으로 효력을 인정하되, 액수가 부당하게 많으면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줄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약정이 사실상 원금을 되돌려 주는 장치로 작동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짚었습니다. 이름을 위약벌로 달아 두어도 실질이 투자금 보전이라면 그대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회사에 있는 방패가 대표 개인에게는 없습니다
주주평등의 원칙은 회사와 주주 사이를 규율합니다. 주주와 다른 주주 사이, 주주와 이사 개인 사이에는 곧바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앞의 2022다224986 사건에서 원심은 회사가 한 약정이 무효라면 대표이사의 연대보증도 부종성에 따라 함께 효력을 잃는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습니다. 회사가 진 약정과 대표 개인이 진 약정은 나누어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가 회사가 아니라 창업자 개인을 상대로 의무를 세우려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회사 쪽에서는 주주평등의 원칙이라는 방어선이 작동하지만 개인에게는 그 방어선이 닿지 않습니다. 벤처투자법이 제3자 연대책임 요구를 막아 둔 것이 창업자에게 왜 큰 의미인지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정리하면 조항은 세 층입니다. 법률이 아예 막아 둔 것은 관행이라는 말에도 물러설 자리가 없고, 법원에서 남지 않는 것은 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 없으며, 양쪽이 정하기 나름인 것은 개정된 표준안을 들고 이야기를 꺼낼 자리입니다. 표준계약서 개정이 닿는 곳은 세 번째 층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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